1993년 충격의 얼티미트 대회: UFC의 역사적인 시작

UFC의 탄생 배경

UFC, 즉 궁극적인 전투 기술의 대회는 1993년에 시작되었으며, 그 탄생은 당대의 스포츠 환경 변화와 다양한 격투 기술의 발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20세기 말, 전통적인 격투기인 권투와 레슬링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팬들과 선수들 사이에서 이종격투기(이하 MMA)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UFC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그 당시에는 단일 격투 스타일이 아닌 다양한 무술과 격투 기법이 결합한 형태가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적 충돌과 문화적 갈등 속에서도, MMA는 국경을 넘어 협력을 이루고, 서로 다른 전통의 격투가들이 한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UFC는 각기 다른 격투 스타일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최고의 격투 스타일을 결정하고자 하는 방안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UFC의 설립자들은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싸움의 매력을 선보이고, 이종격투기의 발전을 촉진하고자 했습니다. UFC는 브라질 주짓수, 복싱, 태권도, 무에타이 등 여러 무술의 융합으로, 선수들이 각자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한 최고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각기 다른 격투 스타일의 변화와 적응을 통해 스포츠로서 이종격투기를 더욱 발전시키는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UFC는 당시의 격투기 시장의 요구를 충족하며, 혁신적이고도 새로운 스포츠 이벤트를 설계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각종 격투 스타일과 무술의 통합은 UFC라는 새로운 역사적 장을 열게 한 중요한 요소였으며, 이는 이후 MMA의 세계적 인기를 불러오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습니다.

 

제1회 대회의 개최

1993년 11월 12일, UFC의 역사적인 첫 번째 대회가 미국 덴버의 맥닉스 체육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대회는 종합격투기(MMA)의 새로운 장을 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으며, 파격적인 경기 방식과 다양한 선수들의 참여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UFC 제1회 대회야말로 ‘무엇이든 가능하다.’ 라는 발리투도 룰을 진정으로 구현한 유일한 대회가 아니었을까. 불알차기 금지, 눈 찌르기 금지, 물어뜯기 금지를 제외한 모든 기술을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회는 그야말로 각종 인체 파괴술이 총동원된 경기의 온퍼레이드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경기는 상대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덩치로 계속해서 이겨나가는 호이스 그레이시의 경기였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격투가들이 태클에 의해 테이크다운당하지 않도록 훈련을 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태클에 의해 마운트 포지션 획득, 그리고 무차별 안면가격으로 이어지는 그레이시유술의 공격 방법에는 당해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이 팻 스미스(Pat Smith)와 스코트 모리스(Scott Morris)의 경기였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자 스코트 모리스는 맹렬하게 대쉬해서 태클을 시도했지만 곧 팻 스미스가 그를 뒤집어서 누이고 맹렬한 펀치를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펀치로 가격할 수 없게 되자 거기에 펀치보다 더 강렬한 팔꿈치로 안면을 가격했습니다. 이 안면가격의 위력은 가히 전율적이었습니다. 마운트 당한 상대의 안면을 향해 1초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3번의 팔꿈치 공격이 가해졌습니다. 첫 번째 일격에 누워있는 상대의 한쪽 눈이 터졌고 두 번째는 코뼈가 일그러졌고 세 번째는 입과 턱이 찢어졌습니다. UFC의 명물 레프리인 존 매커시가 접근했을 때는 이미 스코트 모리스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팻스미스가가격을 멈추지 않고 레프리 스톱이 걸릴 때까지 계속 가격했다면 스코트 모리스의 생명이 위험했을지도 모릅니다. 룰에 의해 보호받는 경기가 얼마나 안전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반면교사였던 셈입니다.

 

대회의 주요 경과와 결과

1993년 11월 12일, UFC 1이 열리면서 종합격투기(MMA)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대회는 다양한 격투기 스타일을 지닌 선수가 참가한 최초의 이벤트로, 그 안에서 발생한 경기들은 훗날 MMA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각 선수들은 자신의 기술을 바탕으로 승부를 펼쳤으며, 이로 인해 관객들은 다양한 격투기 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첫 경기는 전통적인 유도 기술을 가진 아르투르 전치와 무에타이의 대가인 패트릭 스미스를 포함하여,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선수가 맞붙었던 경기였습니다. 전치의 유도 기술은 스미스의 타격 중심 전술에 맞서 효과적으로 활용되었고, 결국 전치는 상대를 제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회에서 유도 기술의 유용성이 돋보였습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경기는 하이데르 토리와 그레이트 개프리스의 대결로, 둘 다 자신의 스타일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전략을 갖고 있었습니다. 토리는 그의 강력한 레슬링과 그라운드 제압을 활용하여 개프리스를 제압하였고, 이 경기를 통해 레슬링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토리는 치고받는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대회의 최종 결과는 에드워드 알바렝과의 결승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알바렝은 그의 독특한 스타일과 뛰어난 빠르기로 찬사를 받았으나, 결국 하이데르 토리가 글로벌 챔피언으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앞으로 UFC의 방향성과 선수들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MMA의 다양한 기술과 스타일이 혼합된 UFC 1은 단순한 대회를 넘어서, 다양한 격투기 팬들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향후 UFC의 발전과 성장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각 선수들은 이 대회를 통해 자신들의 기량과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UFC는 이제 모든 격투기 스타일에는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였으며, 이를 통해 향후 종합격투기의 세계적인 인지도를 높여 갔습니다.

 

UFC가 남긴 유산

1993년 11월, UFC의 첫 번째 대회는 전 세계 무술계에 충격을 주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대회는 다양한 무술 스타일이 맞붙는 이종격투기(MMA)의 획기적인 플랫폼을 제공했으며, 그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UFC는 무술 세계에 대중적인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MMA의 성장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UFC의 출범은 전통 무술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전투 기술이 실전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권투, 유도, 태권도, 레슬링 등 여러 스타일의 격투가들이 각각의 강점을 겨루면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MMA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UFC는 이종격투기의 대표적인 리그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무술계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선수들은 MMA 훈련을 통해 종합적인 기술을 익히게 되었고, 각종 무술 단체들도 MMA에 적합한 각종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MMA는 단순한 격투기가 아닌 대중 스포츠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이는 UFC의 존재 없이는 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UFC는 이제 단순한 대회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스포츠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동시에, 이 대회가 가져온 변혁은 경기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 선수 기획, 이벤트 진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UFC가 남긴 유산은 단순히 격투기를 넘어, 변화와 혁신의 상징으로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참조 :  프로레슬링의 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