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의 발전사
원래 격투기(格)라고 하는 것은 올림픽 경기에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있는 복싱이나 유도, 레슬링과 같이 스포츠로서 오랫동안 역사를 지켜 왔던 경기에 최근 들어 가라테나 태권도, 우슈 등의 맨손무술이 융합된 경기를 일컬었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 상식이었다. 축구나 야구, 럭비, 미식축구 등을 구기로 부르고 마라톤이나 단거리, 허들 등을 육상경기로 부르는 것처럼 특정한 경기의 경향을 가리키는 의미였던 것이다.
이렇게 격투기에 속하는 각각의 경기에는 나름대로의 룰과 대회의 운영을 통괄하는 단체나 협회가 있어서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모두 그런 협회에 의해 통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복싱은 복싱대로, 유도는 유도로, 태권도는 태권도로 각각의 장르를 지켜왔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격투기’는 이런 장르 구분과는 상관없이 킥복싱과 종합격투기(MMA:Mixed Martial Arts)를 가리키는 것으로뜻이 바뀌게 되었다. 아니 그보다 몇 년 전에는 ‘격투기’라는 단어 자체가 ‘킥복싱’의 유사어로 쓰이던 시절도 있었다.
역도산과 일본에서의 프로레슬링의 태동
2차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 된 일본에서는 TV가 보급됨과 동시에 복싱과 프로레슬링이 양대 인기 스포츠로 떠올랐다. 복싱은 아마추어 조직도 존재해서 전쟁 전부터 행해져 왔던 경기였기 때문에 TV방송이 시작된 이후 하나의 방송장르로 다루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프로레슬링은 미국에서 들여와서 느닷없이 TV를 통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경기였다.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경기가 일반적인 프로경기와 어떻게 다른가. 야구와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야구는 아마야구와 프로야구로 나뉘어 존재하고 있다. 아마야구를 통해서 선수를 육성하고 그들 중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선수가 프로로 가서 돈을 받고 경기를 하게 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프로레슬링의 경우는 경기를 하거나 선수들의 시합을 통해서 승패를 결정짓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관객을 끌어 모아서 돈을 벌어들이는 ‘흥행’이 우선되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인기선수를 내보내서 손님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최고의 목적인 프로레슬링으로서는 스포츠적인 성격보다는 선수를 어떻게 하면 멋지게 보이게 하는가, 어떻게 하면 선수에 관한 화제를 보다 부각되게 하는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프로레슬링의 성격은 역도산이라는 국민적인 슈퍼스타를 통해서 순식간에 일본인들을 매료시키게 되었다. ‘미국에서 불러들인 거대한 외국인 선수를 역도산이 가라테 촙으로 간단하게 해치운다.’ 라는 지극히 단순한 시나리오가, 패전을 경험하고 위축될 대로 위축되어 있던 일본인의 열등감을 완전히 날려버리는 통쾌한 엔터테인먼트로서 받아들여져 프로레슬링은 일약 국민적인 스포츠로 발돋움하였던 것이다.
그 뒤 역도산이 야쿠자와의 분쟁에 휘말려 칼에 배를 찔려 사망한 이후, 그의 정당한 후계자를 자처하며 전일본프로레슬링을 설립한 자이안트바바는 역도산이 구축한 ‘대중오락으로서의 프로레슬링’을 그대로 계승해서 인기를 유지해나갔다. 바바는 일본텔레비라고 하는 강력한 스폰서를 등에 업고 국민적인 인기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안토니오 이노끼와 실전프로레슬링의 환상
그러나 1970년대가 되자 브라질에서 건너온 ‘안토니오 이노끼’라는 새로운 혁명아가 등장한다. 이노끼는 바바와 등을 지고 새로운 단체인 신일본프로레스를 창립하게 되는데, 이미 유명한 외국인 선수는 모두 바바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역도산 스타일의 ‘유명 외국인 선수를 일본인 레슬러가 쓰러뜨린다.’ 라는 시나리오는 쓸 수 없었고 덕분에 흥행도 부진을 면치 못하였다.
‘기존의 프로레슬링으로서는 도저히 바바를 쓰러뜨릴 수 없다.’고 판단한 이노끼는 정통 프로레슬링을 구사하는 바바와 차별화하기 위해서 자신은 ‘스트롱 스타일의 프로레슬링을 추구한다.’고 어필했다. ‘스트롱 스타일’이란 프로레슬링의 ‘격투기적인 박진성’을 강조하고 단순한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선수와 선수와의 복잡한 기술의 공방을 통해서 보다 높은 차원의 레슬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노끼는 이제까지 대중오락으로만 여겨지던 프로레슬링을 ‘스포츠의 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흥행도 제대로 되지 않는 신흥 단체 내에서 아무리 저 혼자 소리치고 있어 봐야 아무도 그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노끼는 프로레슬러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존재증명으로 다른 격투기와의 대결을 시도했던 것이다. 오늘날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종격투기’의 구상은 실은 이끼의 이때의 결심으로부터 비롯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이끼는 유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윌리엄 루스카(Willem Luska), 복싱 헤비급의 제왕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극진회관 최강의 사나이로 불렸던 ‘곰잡이’ 윌리 윌리암스(Wille Williams) 등과 싸움으로서 ‘프로레슬링의 실전(實戰)’을 증명하려 했다. 그의 이런 시도는 멋지게 성공했다. 기존의 프로레슬링을 능가하는 긴장감과 시합전개는 팬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복싱을 제외하면 ‘프로격투기’가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의 일본에서 이노끼가 주장한 ‘과격한 프로레슬링’은 기존의 프로레슬링에 식상했던 팬들을 모두 끌어당겼던 것이다. 그리고 이끼의 ‘실전 프로레슬링’에 매료된 많은 젊은이들이 신일본프로레스에 입문했고 다시 그와 결별하고 UWF라는 단체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참조 : UWF(유니버설 프로레슬링 연맹)란?
[…] 참고 : 격투기의 발전사 1편 […]
[…] 참조 : 프로레슬링의 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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