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A 두선수가 겨루는 모습

MMA(종합격투기)의 탄생 (4편)

MMA는 관전무술의 하나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인터넷상에는 많은 MMA 관련 카페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활발한 곳은 자체적으로 모여 연습을 하고 팀까지 구성할 정도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마니아들의 대부분이 프로레슬링과 워리어, 헐크 호건에 환호하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프로레슬링은 시나리오가 있는 경기이다. 선수뿐만이 아니라 관객들도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프로레슬링을 즐겨 보는 이유는 그 경기의 본질이 ‘쇼’ 이기 때문이다. 쇼는 즐기기 위한 것이다. 경기의 성격 규정을 엔터테인먼트로 한 이상, 얼마나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프로레슬링은 참여하는 경기가 아니라 프로선수들의 기량을 보고 즐기는 것이다. 여기서 무술의 용도를 ‘보는 것’에 중점을 두는 사람과 참여’ 하는 데 중점을 두는 사람들로 나누어진다.

K-1과 Pride, UFC와 같은 경기들은 ‘보는’ 경기이다. 공 하나만 있으면 그런대로 즐길 수 있는 농구나 족구와는 달리 매우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사람들만 경기에 임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MMA와 프로레슬링은 궤를 같이 하는 스포츠이며 MMA는 프로레슬링의 마케팅 대상과 일치한다. MMA 대회에 나가 호연지기를 불사르고 싶다는 사람들의 심리는 영화를 보고 멋있는 주인공과 자아를 일치시켜 대리만족을 느끼는 영화들의 심리와 유사하다. 월드컵 대회에서 열광적으로 응원했던 사람들이 아마추어 축구단에 입단하여 축구를 하는 비율보다 MMA 대회를 보고 가슴이 뜨거워져 MMA 동호회에 가입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남자아이들은 칼을 가지고 놀기 좋아한다.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강한 권력을 소유하고픈 욕구를 가지도록 교육받는다. 낮의 권력은 검사나 정치가들이 소유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보통사람이지만 마음속으로 빨간 망토를 쓴 밤의 영웅이라도 되기를 원하는 남자라면 어두운 무대에서 피를 흘리는 광경을 보고 흥분하기 마련이다.

종합격투기는 업계의 벽을 허문 이노베이션이었다. 일본 무술계에는 무술의 종류에 따라 경제적 기반도 달랐으며 이들 간의 왕래도 많지 않았다. 각 무술의 경제적 기반을 살펴보면 아마추어 무술의 대표적인 것은 유도로서 학교체육으로 발전되었으며 유도선수들의 진로는 경찰이나 군대에 가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극진가라테의 경우는 조금 독특한데, 학교체육이나 엘리트체육으로 전문화된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밀착한 도장을 세워 레슨프로의 길을 선택했다.

프로레슬링은 순전히 프로 선수들만 있으며 경기의 흥행을 위주로 한다. 권투와 스모는 아마추어 선수와 프로 선수가 혼재한 프로격투경기이다. 하지만 권투는 프로경기만으로는 수입을 얻기 힘들다. 해외의 유명 헤비급 선수들의 비싼 개런티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예외적인 경우이다. 일본의 전통을 내세우며 스포츠 본래의 논픽션성을 가지고도 성공한 스모 경기가 있긴 하지만 복싱과 킥복싱은 전업선수가 매우 드물다. 이런 점에서 일찌감치 진검승부를 단념하고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으로 들어간 프로레슬링을 부러워할 만하다. 권투의 경우, 아마추어는 학교클럽에서, 졸업 후에는 취미로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관전무술과 참여무술은 선수들의 생명에도 차이가 난다. 유술기 경기는 40대 중반에도 프로선수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문 편이며, 관전무술은 유도나 가라테처럼 단수가 낮거나 고령자라도 참여할 수 있는 평생무도는 아니며, 프로무술 경기는 자기단련이라는 의미에서 무도성은 높지 않다. 극진가라테처럼 흥행과는 상관없이 레슨프로의 기반을 확립한 단체는 일본에서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극진카라테는 ‘지상최강’과 ‘초인’ 이라는 선전문구로 관원을 모집하고 관전과 참여를 일체화하였다. 극진가라테는 체육협회나 학교에 속한 기존무술과는 다르게 지역기반 도장에서 세계적인 단체로 성장하였으며 만화, TV, 영화 등 매스미디어 속에서 자신의 무술을 어필하는 쪽으로 활로를 개척했다. 경제적인 기반도 특이했다. 지역체육관을 차리고 회원을 모집하여 지도자가 생활을 유지하는 레슨프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지역에 기반을 둔 무술도장은 자연스럽게 관전과 참여가 일치한다. 대회가 열리면 관중도 선수도 모두 체육관의 회원이거나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관전과 참여가 일치된 까닭에 관객들의 수준이 높으며 사회체육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상기의 무술시장들이 ’90년대 들어오면서 입식타격기는 K-1으로, 종합격투기는 프라이드로 재편되기 시작했으며 룰의 종합화가 이루어졌다. 룰의 종합회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K-1와 같은 입식타격기가 동일한 룰에서 누가 제일 강한가를 가리는 경기라면, 프라이드 같은 경기는 누구라도 강함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룰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 룰이 만들어지고 수정되는 기준도 역시 실전성-누가 제일 강한가?-에 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실전무술로 유명했던 극진가라테에 대항하기 위해 글러브를 끼고 안면공격을 허용하는 풀컨텍트 가라테 단체들이 생겨났다. 소위 글러브 공수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글러브를 끼자 가라테 단체와 킥복싱 단체간의 교류전이 발생하였으며 이런 흐름이 K-1 대회로 종합화되었다. K-1 대회로 말미암아 아마추어 영역에 있던 가라테 수련자들이 프로선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무술 자체는 아마추어지만 선수들은 프로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현상이 생겨났다. K-1은 몇 가지 점에서 기존 무술계의 장점이 적절하게 혼합된 경기였다. 선수들에게 가혹한 토너먼트라는 방식은 가라테 시합에서 가져왔으며 프로레슬링의 쇼적인 측면을 도입했다. 화려한 선수 소개, 무대와 조명 등은 콘서트장처럼 관객이 즐길 수 있는 갖가지 장치를 고려한 것이다. K-1 대회 초창기는 상당히 소박하게 경기를 치렀고, 이 경기가 성공할 것이라는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대회가 지속되고 차츰 에피소드가 쌓인 1990년대 후반이 되자 K-1 대회에는 젊은 여성들이 관객들로 오기 시작했다. K-1이 흥행면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K-1이 성공한 대회는 아니었다.

 

종합격투기계는 여러 흐름들이 포함되었다. ’80년대 들어 쇼같은 미국식 프로레슬링에 대항하여 일본에서는 리얼파이팅을 주장하는 레슬링 단체가 생겨났다. UWF로 대표되는 이 단체들은 레슬링의 형식을 빌지만 기술만이라도 진지하게 하자는 쪽으로 진행이 되었다. 사실상 UWF는 프라이드 경기의 원조 격이 된다. 또 다른 레슬링단체인 판크라스도 기존 레슬링의 궤를 넘은 격투기로 자리잡았지만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는 것은 금지되었다. 또 ’80년대 후반 입식을 위주로 던지며 그래플링을 도입한 대도숙, 투(投), 타打), 극(極, 필살기)의 균형을 취한 슈토(修) 등의 흐름이 프라이드로 종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군소단체들의 실험이 계속되던 중 1993년 UFC대회에서 그레이시 유술이 등장하였고 이것은 기존의 대회에서 금기시했던 제한을 일거에 철폐시켰다. 금기시되었던 안면타격이 허용된 대회였으며 마운트 자세에서의 얼굴 타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UFC 대회를 기점으로 기존의 관절기 체계가 완전히 바뀌어 그때부터 MMA에 적합한 기술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무술은 싸움이 아니며 현대에서는 스포츠의 일부가 된 것이기 때문에 룰이 존재하게 된다. 스포츠라는 상황에까지 내몰아서는 안 된다. 무술경기에서 상대를 위험에 빠뜨릴만한 기술들은 대부분 금지시켰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방호구를 입혀 부상을 방지했다. 현대에서 룰은 한 무술의 특성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수단이다. 권투를 권투이게, 유도를 유도이게 하는 것은 룰이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권투 선수는 발차기를 무서워하고 태권도 선수는 유도선수의 기술을 두려워한다. 축구와 야구만큼 다른 분야에 있는 스포츠를 한 경기장에서 싸우게 한다는 발상 자체는 무술이라는 커다란 범위에서는 이론적으로 가능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현대의 무술 자체의 범주는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무술에게 공정한 룰을 적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링 위의 최강 무술을 고르는 것은 룰 때문에 확률상의 문제가 된다. 다양한 룰과 상황을 만들어 평균적으로 어떤 무술이 강세를 보이는지 판단할 수밖에 없다. 경기장도 매트와 링을 벗어나 흙바닥, 진창, 자갈밭 등등의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야 모든 무술에게 공정할 것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복장의 문제도 큰 역할을 한다. 현재 MMA 경기는 대부분 맨살로 진행되기 때문에 기술 자체가 도복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훌륭한 유도 기술들의 일부가 사장되고 있다. 링 또는 변형된 링과 푹신한 바닥에서 맨살로 경기가 진행되는 한 MMA에서는 아마추어 레슬링 계열의 유술계 선수들이 강점을 보일 수밖에 없다.

룰 제정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관객에 대한 배려이다. 현재 어느 격투기계도 관객을 무시할 수 없다. 보수적이었던 유도계에서도 칼라도복을 도입한 바 있다. 그동안 관전무술의 대표 격은 프로레슬링이었다. 이 경기는 순전히 구경하는 것이 목적이며, 정교한 연예산업이라는 점에서 대중소비사회의 산물이다. 프로레슬링에서는 관전과 참여는 정확하게 분리되며 선수, 관객과 더불어 평론가도 필요하다. 프로레슬링을 구경하는 관객들은 무술수련생들이 아니다. 이들은 음악 콘서트, 연극과 같은 공연들 중 하나로 레슬링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재미이다. 프로레슬링을 보는 사람들은 무대에서 보는 것 외에 별도로 수련을 하지 않는다. 관객과 공연자간의 분명한 역할분담이 되어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MMA 경기를 보는 남자들은 한 번 그런 경기에 참여해 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고 한다. 인터넷상에 있는 많은 이종격투 클럽에서는 실제 격투연습에 참여해 보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이종격투경기는 관전과 참여와의 관계가 아직 불분명하다. 프로레슬링과 같은 관전무술이지만 관객들은 참여의 욕구를 느끼고 있다. 이종격투경기는 형식적으로는 프로레슬링처럼 흥행을 목표로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도복무술의 자기단련과 극기라는 특성을 물려받았다. 이것은 최강의 무술가를 뽑는다는 초창기 홍보 전략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아직 MMA가 초창기인 탓에 기획자와 관객 모두 새로운 현상에 대한 이해와 역할분담이 부정확한 것이 현실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MMA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기량은 향상될 것이며 일반인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수준까지 가게 되어 관전무술의 하나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참조: MMA(이종격투기)의 탄생 (5편)